가장 어두었던 시대, 가장 빛나는 선지자
(약 5:17~18)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열왕기상17-18, 약5:17-18).
솔로몬의 범죄로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다가 나눠진 이후 남유다는 오바댜, 요엘, 이사여, 미가, 나훔, 스바냐, 예레미야, 하박국, 다니엘, 에스겔 선지들이 그 시대의 등불이 되어서 그 시대의 진리의 빛을 밝혔습니다.
반면에 북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죄악으로 치닫고 있을 때 빛나는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는데, 그들이 엘리야, 엘리사, 요나, 암모스, 호세아 등... 이 가운데 엘리야 선지자는 가장 칡흙같이 어두웠던 시대에 가장 빛나는 선지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엘리야가 활동했던 시대의 특징과 엘리야의 응답 받는 기도에 대해서 같이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시대적 특징
1)북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인 여로보암의 죄를 가볍게 여기는 시대(왕상 16:31)
아합은 북조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여로보암의 죄를 오히려 상대적으로 가볍게 한 극악한 왕이었다고 왕상16:31-33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상11:38)에 하나님은 여로보암에게 다윗의 길로 행하며 계명과 율례를 지키면 네 나라를 견고하게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왕상12:25-33). ①세겜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워 섬기게 했고, ②레위자손이 아닌 백성들로 제사장을 삼고, ③7월 15일 장막절을 자기 맘대로 8월 15일로 바꾸었습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노를 격발시키고 온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는 길을 가게한 큰 죄를 지었고, 여로보암 왕을 악한 왕의 대명사로 불리우게 됩니다. 그런데 아합은 여로보안의 죄는 시시한 것으로, 죄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마치 가인의 족보에 라멕이 가인이 범한 살인사건을 우습게 여기고 사람들의 목숨을 파리 목숨같이 여긴 것과 같은 것입니다(왕상 15:34, 16:2). 아합은 이러한 여로보암의 죄를 오히려 상대적으로 가볍게 한 극악한 왕.
(2)하나님의 말씀을 버림(왕상 16:31~33)
아합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 백성들이 바알을 섬기도록 조장(장려, 권장), 이세벨이 들여온 바알과 아세라(바알-농토와 농토의 소출을 주관하는 남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많이 섬긴 신 아세라-가나안 신들의 모신, 풍요의 여신. 항상 바알과 함께 같은 사당에서 숭배)를 숭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을 버렸습니다
(왕상 18:18)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버렸고(아자브) - 아무런 쓸모없다고 무시하고 내던져 버리는 것을 의미).
이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성을 건축한 일입니다. 수 6:26을 보면 약 500여년 전 여리고성을 다시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여호수아를 통해 경계하셨는데도, (왕상 16:34)에서 히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여리고성을 세우다가 장자와 말째가 죽은 저주를 받았다.
(3) 주의 선지자들을 살해했습니다(왕상18:4, 19:10, 14)
(왕상 18:5)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일백인을 가져 오십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었더라
이렇게 가장 어두웠던 시대에, 이 악한 세상을 상대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강력한 말씀과 기도의 사람, 엘리야를 세우셨습니다.
2. 엘리야의 기도
1)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에서 승리한 기도 (왕상18:19-36)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에 모아놓고, 엄청난 제안을 합니다. 제단에 제물은 놓고 각자의 신에게 기도하여 누구든지 하늘에서 불이 내려 그 제물을 태우는 신이 참신이라고 결정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21절에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백성들에게 신앙의 결단을 요구하지만 백성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세상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며 두 마음을 품은 자들입니다. 신앙의 불구자들입니다. 갈멜산 전체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득히 운집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다수결로 한다면 결과는 말할 나위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엘리야는 아주 당당하고 조금도 두려움 없이 모든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850대 1로 대결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보고 너희가 먼저 해보라고 우선권을 주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기 때문에 자신만만하고 당당. 아세라와 바알의 선지자들은 반나절이 넘도록 온갖 기도와 춤, 굿을 다하고, 나중에는 칼과 창으로 자해하며 피까지 흘렸지만 불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1) 무너진 단을 고쳐 쌓음(와상 18:30)
엘리야는 먼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다시 고쳐 쌓았습니다. 그동안 제대로 예배생활을 하지 않아 무너져 버린 제단을 다시 고쳐 쌓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온전한 제단을 쌓을 때, 온전한 예배를 회복할 때 하나님은 우리 삶을 회복시켜 주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 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30절, 32절에 반복)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얼마나 정성을 다해서 준비합니까? 한 주 동안 세상살이에 흩어지고 일그러진 모습일 때가 더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자신의 마음의 단을 정비하고, 정결할 때 그 제단에서 올리는 예배에 엘리야같이 하늘의 불이 임할 줄 믿습니다(출 19:10~11).
(2) 불가능한 상황에서 언약의 하나님께 기도(33절)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큰 통 4개에 물을 가득 담아 와서 단에 붓기를 3번이나 하게 하셨습니다. 12통의 물을 부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32절을 보면‘저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라고 하였습니다. 직역하면 ‘여호와의 이름으로’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한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이라도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한 엘리야이었기에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오르도록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왕하 2:1~11). 에녹도 하늘로 데려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받았기 때문, 그 이유는 (히 11:6)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엘리야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을 부르면서 기도했습니다. 첫째는 오늘 주께서 하나님 되신 것을 알게 하소서. 둘째는,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즉 엘리야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 후에 응답을 구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후에 기도 응답을 구했던 것입니다. 이 기도를 근거로 하여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하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단의 물과 제물을 순식간에 불태워 버렸습니다. 백성들에게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왕상18:40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완전히 잡아 죽였습니다. 악의 무리를 다 진멸하는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믿는 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
이 불은 인간적인 수단이나 번개나 낙뢰에 의한 불이 아닙니다. 38절에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인간이나 자연의 일반적인 불은 돌과 흙, 물까지 태우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도 모르게 엎드렸고, 바알 선지자나 아합 왕조차 의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39절에 보면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고전 4:20)에 사도바울이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능력은 <기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사단과 하나님의 나라가 대결하는 치열한 영적 대결의 장입니다. 그것은 세상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말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교회 부흥도 마찬가지 입니다(말로 해야 한다 아닙니다. 행함으로서 믿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약 2:18, 2:21~22). 세상을 향해 복음을 증거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단지 입술과 말로써만이 아니라 당당한 실천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약 5:17~18)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엘리야 역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와 본성적으로 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절대로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역시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 뿐만 아닙니다. 성경에는 많은 기도의 능력자들이 나옵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베드로, 바울등... 모두 기도의 능력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본래는 그저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목자였고, 농부였고, 어부였으며, 천막업자였습니다. 우리처럼 먹지 않으면 배고프고, 마시지 않으면 갈증나고, 어려움에 처하면 두려워하고, 위협을 받을 때 불안해하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실망하고, 울고 웃는 감정을 지닌 보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에 특별한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위대한 인물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히 11:6)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