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왕하 2:1~11)
오늘은 세 번째로 가장 어두었던 시대, 가장 빛나는 선지자 엘리야에 대해서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땅의 수많은 영적 싸움이 있었지만, 이 영적 싸움의 마지막은 (고전 15:26)에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과의 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가장 위대한 신앙의 모습은 모든 인류의 마지막 원수라고 할 수 있는‘죽음’을 이기고 승리한 자에게 주어지는 변화승천의 신앙이 가장 빛나는 신앙이 아닌가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인물 중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직접 올라간 사람은 두 사람입니다.
에녹과 엘리야의 변화는 역사적 사실 <에녹의 변화 주전3127년 > <엘리야의 승천 주전 851년 정도>입니다. 우리는 에녹과 엘리야의‘데려감’과 ‘회리바람으로의 승천’을 통해서 장차 이 땅에 있을 두 가지의 변화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에녹의 경우입니다. 첫번 째 사람은 에녹(창 5:21~24)으로 그의 아버지는 므두셀라입니다. 이 에녹의 승천은 너무나 짧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 5:24)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더라”입니다. 에녹을 어떻게 데려가셨는지, 어떤 방법인지, 과정도 성경은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변화는 극히 평범한 삶속에서(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얻은 경우입니다. 그것은 (창 5:24)에서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입니다. 중간에 믿음의 이탈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히 3:14)말씀처럼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변함없이) 붙잡고 간 것입니다. (히 10:36-39)말씀처럼 뒤로 물러가지 않는 신앙의 모습이었습니다. 에녹의 이러한 삶을 (유 1:15)에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은‘경건치 않은 일’과‘경건치 않은 말’을 하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반면에 또 하나의 경우는 엘리야의 승천입니다. 엘리야 선지자의 승천은 매우 인상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힘들고 어두운 시대에 치열한 영적 전쟁을 하며,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어진 승리의 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활동했으며 수많은 이적을 행한 인물입니다. 그를 하늘로 올리실 때도 에녹과 달리 요란벅쩍하게 끌어올리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불말이 끄는 불수레가 나타나서 두 사람을 갈라놓고,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했다고(왕하 2:11)에 말씀하고 있습니다(회리바람 : 쎄아라- 사나운 비바람, 폭풍, 회오리 바람).
(왕하 2:11)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현대인의 성경)이렇게 그들이 말을 주고받으며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불말들이 끄는 불수레 하나가 나타나 그들 사이를 지나가며 두 사람을 갈라 놓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믿음을 통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히 11:6)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어두웠던 시대에 가장 빛나는 선지자, 승천으로 하늘의 빛나는 별같은 엘리야가 보여준 ‘하나님을 기뻐하신 증거’는 무엇일까?
1. 승천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입니다(왕하 2:1, 11)
(왕하 2:1)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왕하 2:11)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 ‘올리고자 하실’(베히알리토) - 엘리야로 하여금 하늘로 올라가도록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강권적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임을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왕하 1:3,6)에서의 ‘올라감’ (왕하 1:15)에서의 ‘내려감’을 주도하신 하나님이 이제 엘리야의 사역을 마감하는 순간 까지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주관하고 계심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에녹의 승천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창 5:24)의 “데려가시므로”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라카흐’입니다. 그 뜻은 ‘이 세상과는 다른 장소 곧 하나님의 나라로 산채로 옮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신약성경 (히 11:5)에는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라카흐’라는 단어가 (왕하 2;10~11)에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던 기사에서도 사용된 것입니다. ‘라카흐’라는 단어는 오직 하나님만이 사용하실 수 있는 단어, 그것이 ‘라카흐’입니다 (반면에 동행하다의 ‘할라크’는 인간 편에서 가져야 하는 단어입니다, 반드시 할라크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있어야 ‘라카흐’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의 재림때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살후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끌어 올려’ aJrpavzw(726, 하르파조) -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수동태). 여기서 하르파조는 이 땅의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도바울도(고후 12:2, 4)에 세째 하늘에 이끌려갔다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라카흐’‘하르파죠’는 즉 땅에서 하늘로 옮기는 것, 인간이 도저히 뛰어 넘을 수 없는 죽음의 장벽을 유월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음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라카흐’ 즉 땅에서 하늘로 옮기는 것, 인간이 도저히 뛰어 넘을 수 없는 죽음의 장벽을 유월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음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2. 신앙의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죽지 않고 승천하는 이 놀라운 역사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생각과 육신의 소욕에 사로 잡혀 평생을 살아가는 자가 변화와 승천을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자만이 누릴 수 있는 극치의 기쁨입니다. 에녹의 승천을 통해서 가르쳐 주는 것은 지상 최고의 기쁨을 누리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히 11:5~6)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실 증거가 무엇인가?
어떠한 증거를 얻었기에 승천할 수 있는가? 그의 사적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1)‘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영광을’생명을 받쳤습니다.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것이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입니다(왕상18:19-36)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에 모아놓고, 그들과의 영적 전투가 얼마나 엄청난 영적 싸움입니까? 이스라엘 전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던 시대입니다. 엘리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합을 만나서 갈멜산 대결을 제안한 것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엘리야는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이 사실을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누가 참신이고 누가 거짓 신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왕상 18:36~37)
만약에 하나님이 불로써 응답하지 않으시면 처참하게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엘리야가 믿는 하나님,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라는 사실 모든 백성에게 알린 것입니다. 이 싸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생명까지 받친 증거가 있는 자입니다(왕상 18:32). 32절을 보면‘저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라고 하였습니다. 직역하면 ‘여호와의 이름으로’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한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이라도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한 엘리야, 이것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오르도록 하신 것입니다.
2)오직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없이 믿은 증거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만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능력이 있음을 증거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3년 6개월 동안 닫혀있던 하늘 문이 열린 것이 무엇입니까?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없이 믿은 것입니다(왕상 18:1). 그 약속을 붙잡고 의심없이 그 말씀에 의지하여 끈질기게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할 때 비난의 소리를 듣거나, 의심이 생기면 포기하고 맙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엘리야와 같은 하늘 승천을 믿는 다면,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무조건 믿는 것입니다.
에녹은 어떠합니까? 그의 아들을 낳고 하나님의 계시로 그의 이름을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는 ‘므두셀라’로 이름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의 경고의 말씀을 굳게 붙잡았습니다. 그것이 동행의 비결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존하시는 하나님을 유일하게 증거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3. 종말에 모든 성도들이 누리게 될 영광을 보여줍니다.
엘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써 어둡고, 타락한 시대에 여호와의 종교를 지킨 사람입니다. 엘리야의 고난은 일사각오의 믿음으로 언약의 말씀을 지키며 말세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승천은 하나님께서 종말에 세상 속에서 고난 받는 당신의 백성들이 받을 구원과 영광을 예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사단의 권세로 말미암아., 피치못 할 고난을 당하게 되지만 그러나 그 고난의 끝에는 반드시 영광스러운 구원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7)라고 말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기 회리바람으로 영광스러운 승천을 하게 되었듯이 이 세상 가운데서 고난을 견뎌 이긴 모든 성도에게는 주시는 축복입니다.
엘리야가 왜 승천했습니까?
<민족적으로 하나님을 떠나고 불신하고>, 백성은 <아합과 이세벨이라는 악의 권력 앞에 아무 소리도 못하는 절체 절명의 위기>를 만났을 때 <오직 엘리야 만이 하나님 편이 된 것>입니다.
마지막 때도 죽도록 충성토록 하시는 교회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약속한 것이 생명의 면류관입니다(계 2:8~11).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생명을 걸고 충성하는 자, 생명으로 갚아주시는 것. 이것이 공의라는 것입니다. 행한대로, 심은대로, 믿는대로 갚아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