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창28:10~22)에 나오는 야곱의 벧엘 사건은 구속사적 측면에서 볼 때 대단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야곱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있는데 하나는 본문의 루스광야(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 위로와 약속을 받는 장면이며, 둘째는 얍복강에서의 하나님과의 씨름 사건입니다. 이 두 사건은 야곱과 그의 자손이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주역으로 나타나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그 중의 첫 번째 사건인 루스에서 본 사닥다리 환상은, 지금까지의 이삭 중심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야곱의 시대가 열려 그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펼쳐지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1. 밧단 아람으로 도망가는 야곱에게 준비한 한 장소(11절)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에서는 분노하였고 급기야 야곱을 죽이려 했습니다(창 27:41). 이때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을 받아 도망칩니다. 하나님께서는 형 에서의 보복을 피해 하란으로 향하던 중 벧엘에 이르러 유숙하던 야곱에게 나타나 위로와 약속을 주셨습니다.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한 곳’직역하면 ‘바로 그 장소’로서 철저하게 한정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즉 이곳은 하나님의 언약이 있기 전에는 단순히 여러 장소 가운데 한 장소에 불과하였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지고 난 이후에는 매우 독특하고도 중요한 장소가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11절 전체에서 ‘그 장소’를 나타내는 단어가 4번이나 사용됩니다. “한 곳”,“거기서”, “그곳의”, “거기” 즉 이 장소가 하나님께서 하란을 향해 여행하는 야곱을 위해 예비해 두신 장소인 것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난 장소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난 장소마다 구속사의 중요한 이정표를 남겨 표징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의 회개의 장소 고백 (대상 22:1), 아브라함이 이삭을 받치던 장소(창 22:2), 모세의 시내산 떨기 나무(여호와의 산 호렙에서) (출 3:1~4)등이 그러합니다.
고독과 절망의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 그 자리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진 야곱입니다. 사랑하는 부모와 집을 떠나 외로움과 고독가운데 눈물을 흘리면서 허허 벌판에 돌베게 자고 있는 야곱입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단신으로 허허벌판을 나온 불안과 두려움에 잡힌 야곱이지만 그가 피곤하여 쓰러진 그 장소가 하나님이 준비하신 장소입니다.
(한 곳에, 거기서, 그곳의, 거기)를 강조한 것은 장차 야곱과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인류 구속 역사를 이루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은 하란으로 여행하는 야곱의 일거수 일투족, 잠자리에 이르기까지도 일일이 지켜 주셨던 것입니다(시 121:3~4).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체험한 순간, 모든 것을 소유한 인간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언약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믿는다면 그 피곤하고 힘든 장소가 하나님께서 만나기 위한 언약의 장소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루스에서 본 사닥다리 환상(28:10~19)
야곱은 동반자 하나 없이 먼 길을 외롭게 가면서 그 심신이 무척 피곤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해가 자지 마자 거기서 유숙하려고 루스에서 한 돌을 취하여 베게하고 잠이 들었습니다(창 28:10~11).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께서 외롭게 광야에서 잠자고 있는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실로 놀라운 광경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꿈을 통해 땅 위해서부터 시작하여 하늘에 그 꼭대기가 닿아 있는 사닥다리 위에,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 내리락하는 환상을 가운데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였습니다(창 28:12).
‘섰는데’(뭇차브)는‘굳건하게 서다’의 뜻이 잇는 ‘나차브’의 사역 수동형 분사로서 이 사닥다리가 혼자 힘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강한 외부적인 힘에 의해 흔들림없이 단단히 세워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 사닥다리 위로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야곱은 한 천사만 본 것이 아니라많은 천시의 무리를 보았던 것입니다. 13절에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희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성도 여러분!
오늘 야곱의 사닥다리 기도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의지할 것이 다 사라져 버리고, 그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바로 그 시점에 여태껏 침묵하시는 것 같은 그 하나님이 야곱에게 찾아 오셨던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니’이 얼마나 위로의 말씀입니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단신으로 허허벌판을 나온 불안과 두려움에 잡힌 야곱.고독과 절망의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 그 자리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진 야곱입니다.직 아비 이삭이 있는 곳(브엘세바)에만 하나님이 계신 줄 알았던 그가 두려움과 공포의 허허벌판 여기에도 하나님이 계신 줄 알았던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희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야곱은 비록 하나님을 찾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줄곧 그를 찾으셨으며, 야곱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와 동행하셨던 것입니다. 다만 야곱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다가 하나님의 현현으로 이제야 비로서 깨닫은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 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15절에“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야곱은 짐승과 날 짐승들 외에 아무것도 없는 이 빈들에, 루스광야에, 그것도 자기 곁에, 그의 조부, 그의 부친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셨던 그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은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또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죄인된 몸으로 영광의 하나님을 만났으니 스스로 큰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이러한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서서 (창 28:13~15)에 보면 “내가 땅을 주겠다” “내가 ...복을 얻게 하겠다” “내가 너를 지키겠다” “내가 .... 돌아오게 하겠다”“내가 떠나지 아니하고 있다”이 얼마나 죄인 야곱에게 넘치는 축복의 말씀입니까? 이 은혜로 말미암아 연약하고, 나약한 야곱의 영과 육이 동시에 소생하는 기적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이 기적을 체험한 후에 야곱은 변화된 시각으로 여호와를 앙모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뜨거운 신앙을 서원했던 것입니다. 이 임마누엘 되신 하나님을 만난 야곱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20절에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21절)나로 평안히 아비집으로 돌아오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하나님이여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길에 나를 지켜주옵소서
하나님이여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시옵소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보호를 요구하는 기도을 올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평안히 귀가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떠나온 나의 고향 집, 내 부모 형제가 있는 그 고향, 나로 평안히 내 아비의 집에 돌아가게 하옵소서. 이 광야와 같은 세상 내가 영원히 안식할 처소가 아니오니, 하나님이여 약속하신 그 나라가기 까지 나를 인도하소서. 그리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게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기름을 부었습니다(창 28:16~18). 그리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그리고 나는 여호와를 내 하나님으로 모시고 평생 섬기며 살겠다는 간절한 신앙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3. 성도 여러분 이 사닥다리가 무엇입니까?
1)사닥다리는 예수 그리스를 예표한다(사닥다리 언약=벧엘언약). 종교 개혁자‘칼빈’과 ‘루터’는 이 사닥다리야 말로 우리 죄인과 하나님을 잇는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해석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친히 (요 1:51)에 나다나엘에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창 28:12)과 비교해 보면 (요 1:51)에서는 하나님의 사자가 ‘인자 위에’오르락 내리락한다고 하였고, (창 28:12)에서는 하나님의 사자가 ‘사닥다리 위에’오르락내리락 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로써‘인자이신 예수님’과‘사닥다리’가 서로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나를 연결하는 중보자, 이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의 진정한 구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하늘에 올라가는 신령한 사닥다리입십니다(요 14:6, 갈 3:19~20, 딤정 2:5, 히 7:25, 8:6, 9:15, 12:24). 이 분 안에서만 만사형통의 기쁨이, 개인, 가정, 병, 사업 모든 문제의 해결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간절함, 안타까움이, 우리의 정성이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때 반드시 응답이 내리는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야곱이 누워 잠들었던 루스 광야에 하나님이 사닥다리 계시를 통해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은 (창 3:15)에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성령의 역사로 다시 찾아오사 새로운 사닥다리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 사닥다리가 오늘 주위 몸된 교회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의 제단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거룩한 사닥다리입니다. 그리고 이 사닥다리 밑에 모여서 사닥다리 위에 계신 영광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오직 하나님의 음성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내가 땅을 주겠다는 물질의 약속, 내가 자손을 많게 하고 번성케 하겠다 이는 구원받을 많은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내가 네 자손들로 복의 머리가 되게 하겠다. 이는 세상에서 신자들의 축복을 모든 이에게 알리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인생 여정을 책임지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하늘까지 이르게 하시겠다는 임마누엘의 보장입니다. 이러한 축복이 이 땅의 모든 말씀 교회와 여러분들에게 임하기를 주의 이름을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