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마음을 찢는 회개와 각성의 사순절

(욜 2:12~14, 벧전 2:21)



교회는 해마다 부활절을 앞두고 렌트(Lent 앵글로 색슨족의 ‘봄’이라는 말에서 유래
)라고 하는 사순절을 지킵니다. 사순절은 헬라어로 ‘테살코스테’로 ‘40일간의 기념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순절을 지킬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함으로 부활절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기간을 어떻게 준비하면서 부활절을 맞이할 것인가? 




1. 먼저 사순절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순절은 1세기에는 예수님의 시체가 무덤 속에 40시간 동안 있었던 것과 일치시키기 위해 사순절은 단 40시간이었는데, 이것이 3세기에 이르러서는 이 40시간이 늘어나 부활주일 전 한 주간인 6일간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지키게 되었다. 4순이라 함은 40일을 말하는데  성경에는 40이라는 숫자가 여러 곳에 나올 뿐 아니라 대단히 깊은 영적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1)예수님께서 공생애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금식기도 하셨습니다(마4:2).

  2)노아 대 홍수 때 ‘40일’간 비가 내렸습니다(창7:4, 12, 17).

  3)모세도 시내 산 에서 ‘40일’ 동안 금식했습니다(출 24:12~18, 신9:8~14, 출 32:30~35, 신 9:25~29, 출 34:1~28, 신 9:18, 10;1~5) 

  4)엘리야 선지자도 호렙산에 도착 하는데 ‘40일’이 걸렸습니다(왕상19:4, 8). 5)이스라엘 백성은 ‘40일’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했습니다(민13:34). 6)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훈련시키신 기간도 40년이었습니다(신명기 8:2, 시편 95:10). 

즉 40일 이라는 기간은 1)성별의 기간이고 2)준비의 기간(새 시대를 새 역사를 준비)이며 3)내 마음을 확정하는 기간입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절제하는 기간>이며, 동시에 이 기간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믿음의 기간>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이기 때문입니다(벧전2:21). 




2. 주의 발자취를 좇아 살기로 결심하는 기간입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네 차례나 십자가 대속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마 16:21~28, 17:22~23, 20:17~19, 26:1~2).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순간부터 33년 생애 전체가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걸머지고 걸으신 고통의 연속이었으며, 그 고통의 절정은 십자가의 속죄 사역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홀로 얼굴을 땅에 대고(마 26:39), 땅에 엎드려(막 14:35), 무릅을 끓고 (눅 22:41) 겟세마네 동산 전체가 진동할 정도로 심히 통곡하며 기도하셨습니다(히 5:7).

이 십자가의 고난이 얼마나 힘드시고 고통스러우면 (마 26:39, 42, 44)에 세 번씩이나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으며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사자를 보내어 예수님을 도우셨고, 주님은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신 것입니다(눅 22:44). 

십자가의 고난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하는 고통과 형벌을 대신해서 받으신 고난이었습니다(사 53:5, 8).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노라 하는 우리가 이 십자가를 외면하고, 거절하고, 심지어 중심에 멸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3) 

성도 여러분! 참으로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갚을 길 없는 구속의 사랑에 빚을 진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생명 다할 때까지 목숨을 바쳐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십자가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2017년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는 주의 발자취를 좇아 살기로 새롭게 결심해야 합니다. 즉 경건과 순종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기간에는 세상적인 것들을 술과 육식을 금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야 합니다(마 16:24). ‘자기 부인’은 세상에 있는 것들 곧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사랑치 않는 것입니다(요일 2:15-1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결국 사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롬 8:5-7).

이 사순절기간에 우리도 각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야 합니다(롬 5:8). 이는 ‘자기 죽음’의 길이지만, 실은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마 10:39).




3. 사순절은 회개로 자신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욜 2:12~14)

구약시대에는 불에 타서 남은 재위에 앉아서 재를 머리위에 뿌리면서 회개했습니다. 그것은 나의 죄를 성령의 불로 완전히 태운다는 의미가 있으며 철두철미한 회개를 뜻합니다. 사순절은 항상 출발이 수요일 입니다. 그래서 이 날을‘재의 수요일’이라고 부릅니다. 종려나무를 태운 재나 숯으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는 풍습이 이날부터 시행되었기 때문입니다. 회개도 기회가 있습니다(히12:17). 우리에게 언제나 회개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때가 차면 하나님의 공의로 죄인들을 행한대로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지적하고 가르쳐 주실 때 그 때가 바로 회개할 때입니다. 본문 요엘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2절에는 회개의 단계와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첫째는 금식하라는 것입니다. 금식이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행위입니다. 금식에는 자기의 생명을 싫어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범죄한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의미가 금식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의 일단계입니다. 

  둘째는 울며 애통하는 것입니다. 죄를 슬퍼하는 것을 말합니다.‘운다’는 것은 슬픔의 외적 표현이라며 ‘애통하는’것은 내적인 슬픔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13절에는"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고 하였습니다. 옷을 찢는 것은 무서운 재앙이나 극심한 재난을 만났을 때에 행하는 슬픔의 표현입니다(창 37:29~35). 그러나 이렇게 옷을 찢으며 슬퍼해도 마음을 찢는 애통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셋째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13절)

‘돌아오다’라는 원어는 ‘메타노이아’라는 단어로서 가던 길을 180도로 완전히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가던 자들은 세상에게 등을 돌리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회개인 것입니다(삼상 7:3). 사순절 40일 기간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회개의 기회입니다. 만약 기회가 주어졌는데 회개하지 않고 고집을 부린다면 자기에게 임한 진노가 계속 쌓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롬 2:5). 




 결론 : 예수님께서는 이삭이 제물로 바쳐질 때처럼 결박당하셨습니다(마27:2, 막15:1, 요18:12). 제물은 결박 당해야합니다(마20:2). 성도가 직분을 맡게 되면 일에 속박당하고 자유가 없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의 사업에 묶인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행복하게 만듭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사42:1)" 는 구절에도 ‘묶임 당하다, 결박당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아카드’가 쓰입니다. 그것은 제물로써 하나님께 바쳐지는 순간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참된 제물로서의 삶을 살다 가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각자에게 주어진 직분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그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은혜 받은 성도는 마음이 열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게 됩니다. 

이번 사순절에는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꼭 모시고 주님의 아픔을 내 마음속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의 말씀에 붙들림 당하고 결박당해서 주님의 뜻대로만 나의 삶을 살아나가겠다는 굳은 각오와 결심을 하시는 성도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